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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나

정광고무 2008. 8. 9. 08:22

나, 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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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7 : 19-25

    로마서 5장 12절에서 끝절까지에는 한 사람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오고 본문에서도 나란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로마서 7장에 나란 말이 36번 나오고, 원어에는 49번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나와 내가한 말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단어는 나와 내가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시작은 내가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사들 가운데 루시퍼가 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 루시퍼는 하나님의 보좌를 탐내서 하나님을 그 보좌에서 몰아내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천사장의 타락자인 사탄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을 미혹하고 나와, 내가란 단어를 무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4장 12-14절의 말씀,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에서 사탄의 기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하려고 하거나 성공한 뒤에도 나에게 있어서 제일의 골칫거리(주의)는 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용봉이에게 있어서 제일의 골칫거리는 나 자신인 고용봉이란 말입니다. 부모, 형제, 자식, 이웃, 직장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바울은 본문 19-20절에서 제일 골칫거리를 가지고 다루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낮은 자아와 높은 자아와의 투쟁입니다. 로마서 7장 23-24절에서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에서도 나를 이기지 못한 자가 골칫거리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말하기를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민족건설의 유일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나를 부인한 자들의 집단입니다. 결의기관이 아니고 나를 부인한 자들의 순종기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는 율법이란 말이 20번 이상 나오고, 나란 말이 36번이나 나오며 성신이란 말은 하나도 없다가 높은 자아가 승리하고 나니 성신이란 말이 20번이나 나오고, 나는 승리로만 나오다가 영이란 말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을 탄식장이라 하며 8장을 승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나를 부정하지 못한 자를 통한 영향을 알아봅시다.

    (1) 아담과 하와(롬 5 : 12-18)

      ① 에덴 동산에서 실락원으로
      ② 피땀홀리고 해산의 수고도
      ③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큰 회생을 주었습니다.

    (2) 나를 부정못한 요나를 통한 영향

      ① 니느웨성의 구원이 연장되었으며
      ② 같이 배에 탄 사람들의 피해…

      나 하나로 교회와 가정에 풍랑만나는 불복종은 없었나 생각해 봅시다.

    (3) 헤롯왕은 자기 권력 연장을 위하여 유대인 2세 미만의 어린이를 다 죽였는데 공교롭게도 수가 14만4천이었습니다. 나 위한 욕심은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가 있습니다.

    (4) 내가 교회와 가정에 있어서 장애물은 아닌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바울은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했습니다.

      ① 인생은 누구에게나 약점과 흉이 있습니다.
      ②마태복음 l9장에 나오는 청년은 자기가 완전하다했지만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하다 지적했습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십시다.

      ·얌전한 사람은-속이 좁다.
      ·활발한 사람은-덤빈다.
      ·싹싹한 사람은-까분다.
      ·듬직한 사람은-미련하다.
      ·착한 사람은-어리석다.
      ·똑똑한 사람은-인색하다.
      ·잘 웃는 사람은-성겁다.
      ·큰 람은-느리다.
      ·작은 사람은-옹졸하다.
      ·홀쭉한 사람은-경하다.
      ·뚱뚱보는 -답답하다.
      ·경우밝은 사람은 -얄밉다.

    * 누구나 다 약점이 있음을 인정하십시요.

    자기도 친국에 못 들어가고 남에게도 친국을 소유하지 못하게 함은 자기를 죽이지 못한 사람입니다.

둘째로 나를 부인하고 승리한 자의 영향을 알아봅시다.

    (1)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습니다.

    (2)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3) 열왕기상 18장에 사르밧 과부의 말씀 속에 자기 희생의 봉사는 하나님의 종도 살고 자기도 살았음을 보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출생한지 한 주일밖에 안되는 아기처럼 자기를 주장하는 일이 없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앞세우고 내가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며 주님을 슬프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추방하는 원인도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째로 물질소유와 물질봉사에도 내가라는 말을 앞장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19절에 보면 내가라는 말이 6번 나오는데, 곡식을 많이 추수한 농부의 고백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물질, 생명, 평안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2장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음부에 간 부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질봉사에서도,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물질봉사는 오히려 사도행전 1장. 2장, 3장, 4장의 은혜에 찬물을 끼어얹은 봉사가 되었음을 기억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게 한 어린이의 봉사가 더 큰 영향을 주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아간의 물질범죄는 국가에 피해를 주게 하여 회개하게 하였으며, 아담 부부의 먹은 죄는 피땀의 수고와 해산의 수고를 낳았으며, 아나니아 부부의 죄는 교회를 시험하게 했으며, 엘리의 아들 죄는 가정과 국가에까지 피해를 끼쳤습니다.

네째로 사명을 받고 일할 때에도 내가 앞서서 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좀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말입니다.

    어거스틴은 자기를 뽐내는 자는 뽐내면서 파멸에 들어간다 했습니다. 봉사나 헌금을 하고도 내가 나타난다면 괴로울 것입니다. 나를 잊어버리면 기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나를 부정하지 못한 자의 영향을 살펴보았고, 나를 부정한 자의 영향도 살펴보았습니다. 또 은혜받을 때와 받은 후에 내가 앞서지 말아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나를 부인해야 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것들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1) 죄에 대하여 죽기 바랍니다. 혈기, 안일, 고집, 교만에 대하여 매일매일 죽기를 바랍니다.

      (2) 자기에 대하여도 죽기 바랍니다. (갈 2 : 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생활입니다

      (3) 세상에 대하여도 죽기 바랍니다. 오늘까지 붙어다닌 모든 죄의 근성을 십자가에 매장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니 기도함으로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날마다 나를 쳐 주의 말씀에 복종케 하면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