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자료

[스크랩] 이사야에 기록된 예수님

정광고무 2011. 7. 5. 11:32

 이사야에 기록된 예수님

예수그리스도와 이사야와의 관계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하여 ‘모든 성경(오늘날의 구약)’이 증거하고 있고(요한복음5:39), 특히, 선지자 ‘이사야’의 입과 모세의 기록과 시편을 통해서 예언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4:27). 오늘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예언들과 예수님께서 인용한 말씀들을 중심으로 서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눅24:25-27절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 44-48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의 말씀 속에 동원된 어휘(語彙)나 어조(語調) 등은 이사야 선지자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예컨대, ‘화 있을진저’라거나, 심판 시 하나님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육’당한다고 선포하며 ‘살육’이란 매우 껄끄러운 어휘를 함께 사용한 점이나 포도농사 짓는 일과 양(羊)치는 일을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로 빗대고 있는 수사(修辭)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겉을 꾸미는 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점이나, 어린이,고아, 가난한 자, 약한 자, 과부, 여성 등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이나, 사회 정의를 강조한 사실과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 등도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사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이사야서(書)가 예수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들(마태・마가・누가・요한)과 예수그리스도 자신은 이사야의 말, 곧 그 기록을 직간접으로 인용하여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성경에서 파악한 바로는, 적어도 아홉 건 이상의 예수님의 활동이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예언된 것이라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예수그리스도를 알려면 이사야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그리스께서 가장 신뢰했던 선지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사야선지자가 아니겠느냐"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경의 판단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제자들의 기록들을 일일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기록들과 그것들의 출처이기도 한 이사야서의 기록 사이에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1. 첫째, 예수그리스도가 40일 동안 굶주리면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마치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며, 자신에게 세례를 베푼 요한이 붙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 갈릴리로 갔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살았습니다(마태복음 4:11~13). 그런데 이것을 두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4:14~16).

 

단적으로 말해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예수그리스도가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마태가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사야서에서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이사야 9:1).라는 기록이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예수께서 말씀만으로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다 고친 일을 두고, 마태는 “이사야의 말대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했다(마태복음8:16~1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확대 해석할 때에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문장들이 있을 뿐입니다. 곧, 이사야 제53장1절이 그것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①“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와 ②“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이사야 53:11).”가 가장 적확한 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셋째, 예수그리스도가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료해 줄 때에, 바리새인들이 밖으로 나가 예수님를 어떠한 구실로 죽일까 의논하는데, 이를 알아차린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쳐주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였다(마 12:14~16). 이를 두고 마태는 기록하기를,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태복음 12:17~21).”라 했습니다.

 

 마태의 이런 기록에는 이사야의 다음 구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곧,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이사야42:1~4).”가 그것입니다. 이를 인용함은 성령께서 인용하게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4. 네째, 예수가 배 위에 앉아서 해변[갈릴리 호숫가]에 서있는 무리들에게 천국에 대하여 ‘뿌려지는 씨앗’으로 빗대어 설명하자, 그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기를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하면서 덧붙이기를,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13:11~17).”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본인도 자신의 행위나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태까지도 이사야의 기록으로써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생활하고 움직이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이사야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6:9~10).”라는 구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5. 다섯째,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떡[빵]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은 예수님 제자들의 행위에 대해 그 잘못을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하였느니라(마태복음 15:7~9, 마가복음 7:6).”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가 말씀한 이사야의 예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이사야 29:13).”


6. 여섯째, 예수그리스도가 나사렛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섰을 때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받고 펴서 다음 구절을 읽었습니다.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고 앉으니, 회당 안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았다(누가복음4:16~20)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읽은 위 구절이 이사야의 예언에 있는가? 물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 구절이 예수의 출현과 임무를 예언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그리스도가 이사야의 기록[예언]대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의 역할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피하는 대신에 관련된 이사야서의 다음 구절을 제시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사 61:1~7).”


7. 일곱째, 예수그리스도가 제자들 앞에서 많은 표적을 보여주었어도 그들이 믿지 못함을 두고, 요한은 기록하기를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한복음12:37~41).”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이사야의 기록으로 인용한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라는 문장은 이사야서 제53장 1절의 기록 그대로입니다. 곧,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이사야 53:1)”에 근거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팔[肱]’이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는 도구로서 상징화된 말(이사야 30:30, 30:32, 33:2, 40:11 외 다수)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이사야의 기록으로 인용한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문장은 이사야서 제6장 10절의 기록에 근거하였습니다. 곧,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 6:10).” 그것 입니다. 주의 성령이 아니시면 말씀을 믿을 수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을 현재에도 많이 봅니다.


8. 여덟째, 예수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푼 요한의 출현에 대해서 예수 행적을 중심으로 기술한 네 복음서 모두 아래와 같이 조금씩 다르게 기술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이사야 제40장 3절인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이사야 40:3).”는 기록을 인용하셨습니다.


①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태복음 3:3).

②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마가복음 1:2).

③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누가복음 3:4).

④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한복음 1:23).


 이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출현과 활동,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의심하고 멸시하는 당대인들의 행태조차도 이미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미리 예언하신 것을 성취 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라는 것과 그리고 그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네 복음의 필자들이 믿고,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약 6, 700년 뒤의 되어질 일들을 미리 말씀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남긴 전대(前代)의 기록인 성경 말씀속에 은밀히 메시야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나 그의 사도들이 기록으로써 말하는 것처럼, 이사야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메시야의 출현과 임무를 예언했노라고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말씀속에는 인류 구원을 위해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성령의 역사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면밀한 분석과 정확한 판단을 따지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성향을 아시기에 오늘날 과학으로써, 또한 고고학 발굴로써 현격하게 증명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비밀들을 이사야서를 비롯하여 시편 등을 포함한 오늘날의 구약성경에 남겨두셨으며, 그 자체가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기록한 성령의 작품인것은 이미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증명된바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대할 때 기록된 말씀에 대한 이해는 성령의 인도 하심을 받아야만 해석이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서의 성취만을 남겨둔 싯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말씀을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기 위하여 오늘은 예수그리스도와 관련된 말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는 성경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작은 예수로써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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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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