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45 :25-28,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골로새서 3 : 17 "또 무엇을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매년 5월 둘째 주일은 전세계의 교회가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미국 동쪽 버어지니아주 웹스터라는 동네의 한 감리교회에서는 26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충실히 봉사하던 잘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몇 년 후 그 부인의 신앙과 인격을 잊지 못하여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교인들은 멀리 있는 그의 딸 안나를 초청하였습니다. 그 딸은 기쁨으로 예배에 참석하였고 주일학교에서 자기 어머니에게 배운 십계명의 제 5단계를 낭독하여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이때 카네이션을 딸에게 주었음) 그것을 본 백화점 왕 워너메이크가 찬동하여 1908년 5월 둘째 주일에 자기 백화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후 미국 국회는 1914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했고, 우리 나라는 1955년 5월8일(당시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던 것입니다. 이 국제회의에서 어머니날을 정한 목적은 첫째 가정의 행복과 증진을 위해서요, 둘째는 가정의 화목을 더 깊게 하고 나가서는 보다 더 고상한 생활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시대의 변천, 문화의 발달과 이 혼란 때에도 가정만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상 낙원이요, 최대의 안식처이며 사랑의 요양소입니다. 공업화로 인하여 인간의 가치가 상실되고 도시화로 인하여 이웃과 대화가 끊어져 가도 인구 폭발로 인하여 인간의 귀중성을 잃었으며 산아 제한으로 생명의 존귀함이 상실되었어도 가정의 귀중함은 날로 날로 더해 갑니다. 공산주의자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면서 가정에 대한 충성심을 파괴하고 가족제도를 철폐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습니다마는 그는 결국 가족제도 철폐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부강한 사회가 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유대 민족이 그토록 무서운 시련을 당하면서도 망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들에게 비록 나라가 없었고 영토가 없었어도 신앙으로 하나된 가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가정은 누구 나가 갖고 있으며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천주교회의 신부도 가정을 갖고 싶어서 신부의 성직에서 이탈하며, 절간의 스님도 어느 종파에서는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일터에서 일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해만 기울면 자기의 가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부쉬넬 (H. Buschnell)은 "가정이라는 말과 종교라는 말은 친척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농민화가였던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원래 70불밖에 되지 않는 물감과 종이를 들여서 그린 것인데 나중에 어느 미국인이 그 그림을 12만 5천불에 사갔습니다. 얼마 후에 불란서 사람들은 이 명화를 본국에 찾아와야 한다고 결의하고 15만 불을 주고 다시 사다가 루브르 미술관에 걸어 놓았습니다. 이 밀레의 명화인 '만종'은 어떤 젊은 부부가 하루종일 땀흘려 일하다가 예배당 종소리가 들려오자 괭이와 삽을 내려놓고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명화 속에는 세가지 신성함이 들어 있는데
첫째는 가정의 신성함이요, 둘째는 노동의 신성함이요, 셋째는 종교의 신성함이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우리가 사는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 땅 위에서도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타난 축복(祝福)받은 행복한 가정들을 찾아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요셉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창 45 : 28). 이 말씀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야곱의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이 생존하여 애굽 총리가 되었고, 흉년으로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만난 요셉이 아버지의 생존하심을 듣고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선물로 보낸 수레를 보자 기운이 소생한 야곱의 외침입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한 것은 얼마나 통쾌스러운 승리의 함성입니까 ? 그 후에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과 그 외 가족들을 모셔다가 칠년 흉년 속에서도 마음껏 즐겁게 해드렸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끝까지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요셉처럼 위대한 꿈을 가지고 고난의 발자취 속에서도 마침내 큰 축복을 받아 영의 아버지와 육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비를 존경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 쫓기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 17)고했습니다.
순 임금은 동양에서 숭배 받는 이름 높은 효자로서 공자님은 그를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순기대효야여(舜其大孝也與). 순은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이복 동생과 아버지의 갖은 오해와 박해를 받으면서 여러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나 여전한 부모 공경, 동생 사랑이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어 주민의 존경과 칭찬이 자자하여 많은 사람이 그를 흠모하고 덕을 사모하여 그를 따랐으며, 순이 가는 곳에는 1년이 지나면 동네를 이루고, 2년이 지나면 읍을 이루고, 3년이 지나면 도시가 이루어지다가 마침내는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어 그의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성도여! 우리도 역시 영적으로 승리하여 영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며 영광을 돌리며, 육적으로 승리하여 육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현대판 요셉이나 순 임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공부는 않고 데모나 하며 캠퍼스 건물이나 파괴하는 정신으로는 누구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몇십 년 전 남산에서 점치는 장님에게 이웃의 김씨는 술 마시고 노름하기 위하여 돈을 꾸어 썼는데 연말이 되었는데도 빚을 갚을 길이 없자 방탕한 아버지는 자기의 딸을 장님에게 데리고 살라고 주었습니다.
장님의 부인이 된 김씨 딸은 성실하게 자기 남편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인의 인도를 받아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을 한 김씨 딸이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여보, 점치는 것을 포기하든지 나를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시오." 하니까 남편은 "점치는 것을 포기할 망정 당신은 포기할 수 없다"고했습니다 그후 점쳐서 모은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두 내외는 그때부터 적수공권으로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후에 그들이 아들을 낳았는데 생활고로 어렵게 키워오던 중 어느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시키게 되었고, 유학의 길까지 올라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회 참의회 의장직까지 역임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저 유명한 백 낙준 박사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그는 분명히 지금도 부모님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조국에까지도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어버이 은혜입니다.
북극 얼음 위에 사는 펭귄 새는 부모가 교대로 알이 얼지 않도록 발등 상에 놓고 깐다고 하며, 바다에 사는 하마는 아비가 배에 있는 주머니에 40일간 넣고 다닌다고 하며, 무당 선두리라는 곤충은 아버지 관등에다 알을 낳아놓으면 깔 때까지 업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에 비할 바 없는 부모의 사랑을 장성하여서까지 받는 만물의 영장 우리는 당연히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어머니를 기쁘시게 한 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룻은 모압 여자로 나오미의 둘째 며느리이며 기룐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이 룻은 신혼생활 도중에 자녀 하나 없이 청춘 과부가 되었으므로 보기 딱한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다른 곳으로 출가하기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 1 : 16- 17).
이렇게 대답하면서 생명 걸고 그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삭 줍는 생활로부터 시작하여 길에서 잠을 자기까지 동행하며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다가 마침내는 그 미행이 보아스에게 까지 전해지자 보아스는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 다시 후사를 잇게 되었습니다. 룻은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다가 자기 자신이 예수의 족보에 오르기까지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1 . 사람은 세 군데의 품속을 지져야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입니다.
(1)자연의 품속입니다. 북쪽에서 자란 사람은 강직한 면이 있고 나직한 야산에서 성장한 사람은 나약한 면이 있습니다 (2) 어머니의 품속입니다. (3) 하나님의 품속입니다. 부모 잃은 사람을 가리켜 고아라고 하듯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영적 고아입니다.
로랑은 "아름다운 아내의 매력은 짧으나 좋은 어머니의 감화는 길다. "고했으며, 나폴레옹은 "자녀의 운명은 항상 어머니가 만든다"고하였으며 서양 속담에 "어머니는 최초의 교사"라고 했습니다. 썬다싱은 "어머니의 가슴은 나의 신학교요, 어머니 가슴에 감춰진 신비는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위대한 사람들 배후에는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김 유신이나 정 몽주를 들지 않아도, 헬라의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에 가서 고관과 귀족들을 초청하고 제왕의 옷을 벗고 어머니가 친히 지어준 옷을 입어서 어머니를 더욱 기쁘시게 하였다 합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내가 나된 것의 전부 그리고 장차 내가 될 것의 전부는 내 어머니의 덕"이라고 했습니다.
2. 위대한 인물은 백 살이 되어도 자기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갑니다.
(1) 용서하는 어머니의 사랑 :다윗이 요나단을 용서했듯이 (삼하 18 : 24-33). (2) 애타게 찾는 사랑 :탕자처럼 (눅 15 : 20). (3)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 (4) 불변하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몇 해 전, 미국의 대학협회에서 삼천 명의 대학지도자를 모아 놓고 그 중에서 열 사람을 택해서 표창을 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훌륭한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생명이 보존되는 장소요,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가치관이 정립되는 장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신(神)이 천사를 불러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세 가지만 골라 오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은 오랜 시간을 소비하여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골라서 신에게 드렸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꽃이요, 둘째는 어린아이의 웃음이요, 셋째는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두었다가 얼마 후에 꺼내 보았더니 꽃은 시들어 향기를 잃었습니다. 어린이의 웃음은 커지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만은 변치 않았고 그것을 본 신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이름 지었다 합니다.
이 세상에서 돌려 받을 생각 없이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이는 어머니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순결하고 인자한 불길 같아서 우리의 생에 빛과 열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다음 가는 사랑은 곧 어머니의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랑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알고 자녀를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며 키워 주신 어머니를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난 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이 주신 그 믿음과 정신으로써 내가 죽은 것같이 생각하시고 슬퍼하는 내 어머니의 호소와 기도를 당신은 물리치거나 못 들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물은 그가 엎드려 기도하는 자리를 적시었습니다. 금이나 은을 구하지 아니하고, 변하고 없어지는 이 땅에 속한 무엇을 구함이 아니고 오직 사랑하는 아들의 죽어 가는 영혼만을 위해 간구하는 이 여인의 간구를 어찌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개심 후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아들에게 "이제 나는 이 생애에 대하여 무엇을 더 원하며 무슨 기쁨을 더 바라리요. 이제 이 세상에서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심한 어거스틴이 어머니를 미처 기쁘시게 하기 전 어머니 모니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는 울다 울다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무가 잔잔하여 하나 바람이 멈추어 주지 않고 내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려 했으나 기다리시지 않고 가셨다"고요.
3. 우리도 어머니를 룻처럼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불초를 풍자한 글에 팔반가라는 것은,
(1)어린애는 욕지거리를 해도 네 마음에 기쁘게 들리고 부모가 한번 책망하면 왜 반감을 가지느냐? (2)아이의 똥오줌은 네게 향기로운데 부모의 침 뱉는 것은 왜 더럽다 하느냐 ? (3)아이는 천 마디 지껄여도 싫지 않고 부모가 한 마디 말하면 왜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고 하며 돌아서느냐? (4)떡하고 과자를 사오더니 부모는 맛보지도 못했는데 아이 입에만 주워 넣느냐 ? (5)약방에 가보니 아이 살찌는 약은 있는데 어른 건강케 하는 약은 없다. (불효, 세상에 노인 약은 안 팔린다고) (6)부하게 살아도 부모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가난하여도 아이의 배는 늘 부르다. (7)부모는 둘이나 서로 모시기를 싫어하고 아이는 열이라도 남 주기를 싫어한다. (8)부모의 열 가지 은혜는 생각지도 않고 아이의 한 가지 효도는 간 데마다 자랑한다. 부모를 때리고 죽이는 세상에 이런 풍자는 아무 자극도 없을 것입니다.
사울은 효자요, 룻은 효부요, 요셉은 효자입니다.
세 번째, 부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가정처럼 행복하여야 하겠습니다 (행 18 : 2).
이 부부는 소아시아 본토에서 출생한 유태인으로 로마 성에서 이주하며 장막과는 생업을 가졌으니 여유 있는 가정은 못 되지만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만족하게 살아가는 축복의 가정이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태인을 축출하매 이 부부는 고린도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 바울이 오자 내외는 목숨 걸고 전도에 협력하며 순교까지 할 뻔했습니다(롬 16: 3-4). 이 부부는 남편보다 부인이 더 신령했으나 겸손으로 서로 위로하며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여유가 없어도 행복한 신앙의 가정이요, 유랑의 생활을 하여도 신앙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신령한 생활로 성령의 능한 자요, 소망을 하나님께 둔 평생 파손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이사벨의 가정이나 아나니아의 가정에 비하면 이 얼마나 축복 받은 가정입니까 ? 여러분의 부부도 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은 부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동과 부부와 종교와 자연은 인생의 4대 신성입니다. 하나님이 신성하게 짝지어 주신 부부이니 있거나 없거나, 지식정도가 이상적이거나 아니거나 서로를 낫게 여기며 복되게 사는 부부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1 . 나를 위하여 최대의 희생자가 세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지요,
첫째는 나를 위하여 피려 구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요, 둘째는 나를 출생 양육해 주신 부모님이요, 셋째는 평생 서로를 위해 봉사를 마다 않는 부부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 17)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인에게 감사하고, 국민에게 감사했습니다. 서로서로 감사하며 이해하며 살아가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님의 남편이 목을 매고 자살했는데 그의 유언장에는 전부가 아내를 원망하는 글뿐이었으며, 또 그 부인은 남편을 원망하는 변명뿐이었습니다.
2.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싶어하는 가정이 되도록 서로서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의 것인 것처럼 부부간의 행복은 서로서로 노력하는 데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여섯이나 얻었어도 만족이 없어 목말라 했으니 그것은 분명 노력 부족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얌전해서 좋은 사람은 속이 좁아 탈이구요, 활발해서 좋은 사람은 덤벼서 탈이구요, 싹싹해서 좋은 사람은 까불어서 탈이구요, 듬직해서 좋은 사람은 미련해서 탈이구요. 착해서 좋은 사람은 어리석어 탈이구요, 똑똑해서 좋은 사람은 인색해서 탈이구요, 잘 웃어서 좋은 사람은 싱거워서 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남편과 아내에게서 장점만 보고 단점엔 눈을 가리고 이해하며 살아갈 때 거기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3. 주님 모신 가정은 서로가 존경하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주님이 안 계신 가정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여성이 그녀의 남편과 동등하다면 노예가 자기 주인과 동등하게 되었을 때의 사회와 똑같이 질서가 문란해질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향에서 여자는 남자에 의하여 공동으로 소유가 되고, 그들의 아이들은 국가에서 돌보아야 된다고 제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신 가정과 사회에서는 결혼의 신성함이 인정되고, 여성의 권리와 선거권이 인정되고, 주안에서 남녀의 차별이 없음을 선포하고 있으니 이 은혜가 남자보다 여자에게 큰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롤랑상의 시(詩)에 보면 "병을 앓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것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것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혀진 여인입니다"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남녀간 남에게 외면 당한 것처럼 불쌍한 이는 없습니다.
과연 죽음 못지 않은 불행입니다 마틴 부버라는 학자는「나와 너」란 글에서 "나는 나만으로서는 존재하지 못한다. 존재(存在)하는 것은 나와 너의 나이거나, 나와 그것의 나이거나 그 둘 중에 어느 하나일 따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내가 없는 네가 무의미한 것처럼, 네가 없는 나 자신도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인정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부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네 번째, 자녀로는 욥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녀교육).
욥이 동방의 의인으로 환난 속에서 인내하고, 불우한 속에서 불평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건도 귀하지만, 특별히 자녀들에 대한 자세는 우리가 함께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는 자기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범죄 함이 있을까봐 날마다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1 . 세상은 자녀 성공을 위하여,
(1)상리적(商利的)으로 머리를 쓰고, (2)학업을 위하여 주일을 범하고, (3)과외공부를 위하여 부채를 지고, (4)학비 조달을 위하여 범죄하며 시키는 교육은 현실에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 갖가지 청소년의 범죄, 살인, 강간, 방종으로 청소년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갈 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머리에 학문만 주입시켰지 인격과 신앙을 심어 주지 못해서 입니다. 그러니 그 책임은 먼저 우리 부모가 감당해야 합니다.
2.. 무성의한 교육
(1) 하나님 떠난 교육 (2) 인격적 교육 없는 지식 (3) 하나님 떠난 도락 (4) 눈물 없는 교육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피륙을 살 때에는 끝을 살피고 아내를 선택할 때에는 어머니를 먼저 본다"는 금언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을 보십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 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 15).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하노라"(골 3 .21).
옛날 로마의 어떤 마을에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재미있게 사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 코르네리아는 부자 친구의 초대를 받아 두 아들을 데리고 손님으로 찾아갔습니다. 친구의 집은 대궐 같은 훌륭한 집이었으며 어리둥절할 정도로 성대하게 차려놓은 음식상과 조금이라도 뒤질세라 화려하게 차려 입은 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들의 장식품과 옷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주인이 값진 목걸이, 진주반지, 다이아몬드를 내보이며 이것이 나의 보화라고 자랑했습니다. 두 번째 여인도, 세 번째 여인도 자기의 보화를 한껏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코르네리아의 차례가 왔습니다. 이때 그는 일어서서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보석은 둘밖에 없답니다. 바로 이 두 아들이 나의 전 재산이자 제일 값진 보화랍니다" 하며 두 아들을 꼭 껴안자 어린 아들들이 "어머니 정말 고마와요." 하는 것을 지켜보던 여인들은 보물 자랑이 그만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가장 귀한 보물처럼 길러진 두 아들은 마침내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그라쿠스 형제입니다. 이들은 옛날 로마의 정치가로서 세상 사람이 지나친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이 평등하게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그 일에 자기의 일생을 바친 형제들입니다.
여러분들 가정의 제일 귀한 보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녀가 제일 귀한 보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자랑거리가 되도록 노력하며 반드시 크게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시다.
1 .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요셉을 생각하며 우리도 아버지를 기쁘시게 합시다.
2 . 시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다가 큰 축복을 받은 룻을 생각합시다.
3 . 행복한 두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생각하며 복된 부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 자녀를 위해 제단 쌓기에 충실했던 욥을 생각하며 우리도 자녀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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