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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 3 · 1 운동과 신앙

정광고무 2008. 8. 9. 08:08

3 · 1 운동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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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8 : 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민족은 매해 3월이 오면 잊을 수 없는 3 . 1절 기미년 독립만세를 회상하게 됩니다 또 우리는 3 . 1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민족의 과거의 뼈저린 수난의 역사를 되새기게 됩니다. 일본의 무력 침략으로 금수강산이 점령을 당해 36년간이나 국권을 잃어 언어를 빼앗기고, 이름도 성도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으면서 하루를 천년같이 고통스럽게 지내왔습니다. 당시에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하나로 인정되었고, 이들의 악정하에 조국의 존재마저 잃어버린 상태에서 우리 민족이 재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는 강제 노동과 징병 징용에 끌려갔고 한편 신사참배로 천조대신을 하나님 대신 섬기게 했고, 교회는 페쇄 지경이었고, 목사님들은 수없이 투옥되었으며 순교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토와 민족이 일본에 예속된 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격언과 같이 조국애에 불타는 애국 지사들은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마침내는 1919년 3월 1일에 세계 만방에 민족 독립선언을 하고, 자유를 요구하다 피를 흘리고 무참히 죽어가며 수없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 33명의 민족 대표 가운데도 기독교인이 16명이나 되었으니 서 재필, 윤 치호, 이 상재, 안 창호,씨를 비롯하여 목사, 직원, 평신도들이었습니다. 이 독립운동은 전국민이 적수공권으로, 무저항주의로 전개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이고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조직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전국적인 민족운동이 더 수월했던 것입니다.

    세계가 기독교를 두려워하고, 정치가나 사업가들이 교회를 이용해 보려는 것도 이 교회의 조직과 저력을 보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선거 때도 우리 700만의 기독교인들은 단결하여 살아 계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저들에게 보여 주어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3 . 1절 때는 이 사건으로 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어 5만여 명이 투옥되고 7천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민족의 독립이 온 것은 아니었으나 이 불길이 꺼지지 않아 은은히 피어오르다가 마침내는 26년 후인 1945년 8월 15일에 우리의 아득한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요,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고찰해 보면 세계는 무정부상태로 약소민족이 영원히 강대국의 노예가 되게 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여년 간이나 답부 지역의 생활에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재기 불능이며 영원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여기에 기적의 손을 드사 출애굽의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세계와 인생과 만국의 통치자가 되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산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현대에 있어서나 하나님을 잘 섬기고 순종하는 백성에게는 번영하는 축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민족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다시 남의 나라에 속국이 되게 하십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조국을 사랑할 때는 나라가 흥했고, 솔로몬 왕 이후 열국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는 앗시리아와 바벨론 나라들의 침략으로 이방 나라의 포로와 노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다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하나님의 채찍임을 깨닫고 사신 우상을 완전히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바벨론은 메데 파사에게 정복을 당하고 메데 파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에 있는 유다 포로민을 돌아가게 하며 성전 기명까지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이들은 다시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행하심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조 말 대원군 시절에 이 땅의 위정자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많은 순교자의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평양 대동강변과 서울 한강변과 삼각산 세검정 부근에서 순교자들의 피가 시냇물 같이 흘렀습니다.

    이 때에 일본은 러시아와 싸워 이기고 한국을 침략 점령하고 합병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박해 중에서도 기독교회는 부흥하여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1907년에 한국 교회는 원산과 평양을 중심하여 큰 불길이 일어나 마침내는 서울로, 인천으로 점화되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세계 기독교인들은 한국을 알게 되고 우리 나라를 통하여 많은 동정의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일본은 기독교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이라 하여 여러 모양으로 탄압하면서 한국을 영원히 저들의 노예화하기 위하여 역사, 문학, 언어 심지어는 이름까지 없애고 기독교회를 한국에서 추방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을 몰아내고 신자들을 전멸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에게 진주만의 폭격을 당하고 아리조나 군함이 침략을 당해 3천명의 해군이 몰살당하여 본격적인 전쟁을 전개하게 되자 일본 사람의 야망과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 세례를 주었고, 일본은 이때에 정신이 번쩍 나서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하게 된 것이 1945년8월 15일이요, 이 연합군의 승리가 한국에 8. 15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이 항복한 후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진주할 때에 그 장병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일본을 무력으로만 항복시킬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항복시켜야 할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원자탄이 투하된 것은 1945년 8월 6일이며 항복한 것은 8월 15일이지만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8월 17일과 18일에는 한국의 지식층과 20만의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려고 계획 준비되었었다고 하니,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에 배후에는 하나님이 섭리하셨고 이 민족을 축복하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애국가에서처럼 하나님의 보호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3. 1절의 정신을 다시 찾아 이 민족에게 재무장을 권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려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려는 마음이 들었듯이 현대 교회와 우리 민족이 이 기쁨의 감격을 잊어버려 근대인의 하나님은 기술이 되어버렸고, 저들의 최고 여신은 향락과 섹스가 되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는 길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저 달나라나 화성의 세계에 가는 데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정복하기보다는 땅을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는 데에 더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적인 평안보다는 물질적인 안정에 우리의 몸을 맡기고 있으며,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만족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먹고 입고 마시며 어떻게 편히 살수 있는가 하는 데에 더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보세요.

    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에게 현대인들은 넋을 잃고 말았으며, 이 지옥과 같이 불타는 세계의 환경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성령으로 무장하여(행 1 : 8),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마 6 : 33), 무너진 성을 건축하기 전 무너진 제단부터 수축해야 하며, 무엇을 건설하기 전에 우리심령의 성전부터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도여 ! 우리는 다시는 나라 잃은 고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내 조국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일제의 쇠사슬에서 풀려 나온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아득한 옛날의 사화(史話)를 듣는 것 같아서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나, 경험한 분들은 지금도 뼈저리게 사무쳐 하며 우리 민족이 주체의식을 좀더 강력하게 가졌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해볼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 민족주의 (Nationalism)는 있을 수 없으나 애국심 (Patriotism)은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없이 교회도, 가정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의 울타리는 허술해지건 말건 내 울타리는 튼튼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국고금을 축내면서까지 내 울타리를 높이 쌓아 올리던 지금까지의 위정자 같은 이들이 다시는 이 땅 위에 나타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조국을 지키는 애국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길일까요 ?

첫 번째, 먼저 자신을 지키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길입니다.

    그 동안 우리 나라의 애국은 혈서 (血書)와 죽음의 애국입니다. 그래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라는 식입니다. 같은 충신이라도 생육신(生六臣)보다는 사육신(사六臣)이 더 훌륭하게 여겨지고, 평생을 조국을 위해서 일한 애국자보다는 할 일을 다 못하고 일찍이 죽어간 류관순이나 민 충정공(閔忠正公)이 더 귀한 애국자인 것만 같습니다. 이 준 씨가 헤이그에서 죽지 않고 돌아왔더라면 그 이름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 피를 흘려야만 열녀요 애국자로만 아는 것도 잘못된 병입니다. 자신을 바로 지키면서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부터가 큰 애국입니다.

    내게 부과된 세금을 내면서 초목 하나를 아끼며 가꾸는 것도 큰 애국입니다.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누비며 데모를 하면서 때려 부수고, 재산을 털어 국회의원에 출마를 해야만 애국자는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시끄러운 애국자의 탈을 쓰고 백성의 피를 긁어먹으며 국고금을 축내는 과거의 고위층 같은 애국자는 망국자요, 이름 없이 빛도 얼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애국자가 참 애국자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지킵시다 그리고 가정을 지킵시다. 그리고 내 직장과 일터를 지킵시다 비 한 방을 한 방울이 모여서 큰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의 작은 충성 하나 하나가 모여 뭉쳐지면 내 조국을 지키며 대적을 물리칠 만한 큰 파워 (Power)가 생깁니다.

두 번째, 조국을 지키는 또 하나의 길은 법을 지키는 준법생활과 국민된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1 법을 지키는 것은 애국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고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누구보다도 준법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탈세를 하거나 병역을 기피하거나 밀수나 밀주 등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국가의 법을 위배하지 말고 사바사바나 어물쩡 넘어가는 일을 하지 말고. 법대로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나라의 법이 때로는 법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해당도 되지 않고 송사리 같은 서민에게만 해당되는 경향을 가끔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사실입니다. 부강하는 나라는 법을 잘 지키는 나라입니다. 나는 미국사람들이 교통 법을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2. 다음은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누구에게나 교육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와 근로 외 의무, 납세의 의무가 있습니다. 나는 교인이니까 피를 흘리는 군인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병역을 기피하는 여호와의 증인 같은 태도는 누가 보아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막 12 : 13).

세 번째, 또 하나의 애국은 우리 민족의 가슴마다 복음을 심고, 의를 심고, 사랑을 심는 것입니다.

1 . 우리는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어서 이 민족의 가슴마다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이 민족이 못사는 것은 기적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세계를 돌아보게 된 나는 과연 우리 나라는 못사는 것이 기적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1. 영국인은 그 조상에 해적이 있어도 어디를 가나 신사 대접을 받으며,
      2. 독일 사람은 갖가지 야만성이 있어도 현재는 어디를 가나 생각 깊고 솜씨 있는 민족으로 존경을 받으며,
      3. 프랑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사치하고 음란해도 질서 있고 애국심 많기로 이름이 나 있으며,
      4. 이태리는 이태리라는 명사만 들어도 도둑놈이라는 연상을 하게 하면서도 예술이라면 이태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 만치 유명해졌으며,
      5. 일본은 섬나라이자 패전국이라도 지금은 세계가 무시하지 못할 경제계에 오르게 되어 어느 나라에 가도 일본 제품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6. 인도는 300년의 긴 압박과 착취에 지쳤어도 세계 질서의 패도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지리적 조건이 있는데도 각 나라에서 도움을 얻어내며, 갖가지 차관을 얻어 오면서도 아직도 세계 문화의 쓰레기 소리를 면치 못하며, 분열된 조국의 통일은 고사하고 점점 분열이 굳어만 가고 전쟁의 위험을 지니고 있으니 이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하나님을 멸시함이 그 첫째요, 땅을 사랑하지 못하며 게으르기만 함이 그 둘째이며,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서입니다. 지금도 휴전선을 지키며, 곳곳에 저수지를 막고 공장이 건설되고 산업이 발전되기는 하나 향락과 암흑으로 흘러 떠내려가는 국민의 타락한 정신을 막지 못한 데에 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덴마크는 지리적으로, 기후적으로 악조건 속에서도, 더욱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전혀 재기불능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동족을 사랑하는 신앙적 개혁운동이 일어났을 때 급기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덴마크에도 이루어졌습니다

    세계일주를 하고 마지막 한국을 떠나는 일행에게 감상을 물으니 우리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두 가지 기적을 보았는데 그 첫째는 덴마크는 못살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도 잘사는 기적이요. 또 하나는 잘살 수밖에 없는 한국이 못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면서 비행기에 오르더랍니다 그런데 일본이 덴마크에서 연구한 것을 보고 와서 그대로 실천하였으나 실패를 하자 이상히 여기고 다시 가서 연구 조사한 결과 덴마크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했고, 일본은 불신앙으로 하여 실패했었다고 벌써 오래 전에 어떤 연구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빨리 내 이웃, 내 친척을 전도해 내야하며 또한 전도사업, 선교사업에 힘써야 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 할 일만도 바쁘고 또 피곤하지만 부흥회를 인도하러 다니는 것은 첫째, 영혼 구원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인 동시에 또 하나는 이 민족을 복음 화하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롬 9 : 1-3).

    우리는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의해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쳐서 발리 이 민족이 복음 화되도록 힘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 마지막으로 조국을 지키는 또 하나의 길은 조국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애국의 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 -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보나 국제 정세로 보나 백척간두에 선 것과 같고 풍전등화와 같아서 언제 어느 순간에 깜빡 꺼질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 없이 살 길이 없습니다. 보세요. 북한과 중공과 소련이 아무리 적화 통일을 꾀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시는 한 결코 안전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절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국가의 비운이나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처참한 전쟁이 히 땅 위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무기 위에 선 나라는 망해도 무릎(기도) 위에 있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야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할 때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와 이사야 두 사람의 기도가 교만한 산헤립의 군대를 돌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왕하 19 : 35-37).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유대인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 것은 다니엘의 기도가 아니었습니까? (단 9 : 3-19).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변화시켜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게 한 것은 느헤미야의 기도의 결과입니다(느 1 : 4-11, 2'2-6)
    "너희 중에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하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고(마 18 : 9),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했습니다(약 5 : 16).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구름을 말려 버리기도 했고 다시 비가 보게도 하였습니다(왕상 17:1 , 18 : 1 , 41-45). 여호수아는 해와 달을 명하여 복종케 하였습니다(수 10 : 12-13),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갈랐습니다(출 14 : 16 ,21-22). 이 역사는 모두가 기도의 사람을 통하여 일어 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 국민은 압제와 주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자유를 달라고 호소하던 기미년 만세를 부른 때가 어제로써 61년째입니다. 죤 스튜어트 밀 (John Steward Mill)이 "생존을 유지하는 수단이 보장된 뒤의 인간의 욕망은 자유다."라고 한 것은 빵의 문제가 해결된 인간이 다음으로 추구하는 것이 자유라는 의미입니다.

    미국사람이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울 때에 애국자인 저 유명한 페트릭 헨리란 사람은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인간은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는 것입니다. 자유 가운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사의 자유, 여행의 자유, 거주의 자유, 그 가운데도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입니다.

    북한은 거주의 자유도 없고, 신앙의 자유도 없고, 여행의 자유도 얼고, 언론의 자유도 다 박탈당했기 때문에 얼마 전에 25살 먹은 젊은 인민군이 자유를 찾아 남하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의 이 자유마저 박탈하려고 갖은 전쟁준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수호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저 이북의 동족들에게까지 이 자유를 줄 수 있도록, 저들의 가슴에 복음을 심을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서 반드시 통일을 성취하여 남한의 이 많은 교회와 신학교와 주의 종들을 이북으로 보내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