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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젖먹이 신자/고린도전서 3장 1 - 3절

정광고무 2012. 5. 25. 11:11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성경에 보면 아주 훌륭한 종교인 같은데 실제로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종교 지도자입니다. 보통 평신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도 잘 알고 기도도 많이 하고 가장 거룩하게 산다고 하는 특별난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세상에 죄 많은 인간을 들먹이면서 우리는 그들과 같지 않게 하심을 감사하다고 자기들 스스로 의롭다고 말하면서 기도합니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28절에 보면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이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는데 그 마음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26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너희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다'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33절에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너희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 아주 무섭게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한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고 겉과 속이 다른 잘못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칭찬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계속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 속에 성령이 없습니다.
유다서 1장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 사람들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고 성령을 알 수 도 없고 성령의 역사를 아주 어리석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버렸습니다. 하나님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등진 사람들입니다. 첫째로는 성령과 등졌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 회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신 사람이라야 회개할 수 있지 성령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은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가 되지도 않고 회개할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려고 정신이 없지 회개할 겨를도 없습니다. 탕자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탕자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탕자는 자기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 알았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성령이 회개할 마음을 주셔야만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사람은 우리 하나님이 아버지 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로마서 8장 15~17절에 보면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이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증언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 안에 계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축복해 주세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런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들도 기도할 때 보면 하나님 소리는 하지 아버지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목사님을 이상한 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지 하루 종일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가를 알고 난 뒤부터 아버지가 있는 세상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중고등학교의 아버지들은 장관, 재벌이었습니다. 굉장한 아버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도 부럽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아버지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인지 아버지를 하루 종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못된 사람들인지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은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과부들을 도와 주어야 하는데 이 과부의 가산을 슬쩍 빼돌리는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 많이 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주 많이 다니는 로리 같은 곳에서 손들고 오래 기도하며 거룩한 척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가증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6장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여기서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도 돈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과부의 가산을 슬쩍슬쩍 삼키고 돈이 우상이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책망 하실 때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했습니다. 모이기만 하면 어떻게 죽일까 공모만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 듣고 양심에 가책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사는데 회개할 마음은 안 생기고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예수님을 죽일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어렸을 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전혀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따라 친구 따라다녔기 때문에 교회생활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는 못했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 천국, 지옥, 심판이 마음에 하나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집사 장로가 되어서도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주색에 빠지고 음란한 죄를 짓고 주일날에 기도순서 맡으면 거룩한 척 기도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뇌물 받기 좋아하고 공무원 하면서 뇌물 좋아하고 사업할 때 보면 사기 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경험한 적이 있을 겁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과 사업하면서, 어느 교회 집사님과 서로 거래하는데 나중에 몇십 억 몇 억씩 떼먹고 도망가서 손해 본 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들끼리는 같은 믿는 성도니까 속으로 삭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사기를 당하면 예수쟁이 정말 나쁜 사람이고 예수쟁이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예수는 믿을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새 신자들 보면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다가 교회에 나오게 된 분들이 있는데 솔직하게 자기는 과거에 그랬다고 간증할 때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사람들이 전도의 문을 막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중에 예수쟁이 때문에 이렇게 망했다고 한 맺힌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가 나쁜 짓을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얼마나 악독한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셔서 부임한 지 1년이 되었는데 7-8배 부흥 이 됐습니다. 보통 목사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장로 중 몇 사람이 자기들이 주인 노릇, 왕 노릇을 하다가 교인이 많아지니까 자기들끼리 왕 노릇할 수 없으니 큰일이 난 겁니다. 어느 날 그 사람들이 목사님 찾아가서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 않으니 목사님 당장 나가라고 안 나가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많이 하는 훌륭한 목사님은 그런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자가 아닙니다. 거듭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교회가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 그리고 자기들은 부자로 살면서 목사님은 가난해야 된다며 생활비, 월급을 일부러 안 줍니다. 저도 3개월을 못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사례비를 안 주려고 하는 교회구나 하고 안 받기로 각오하고 일했습니다. 목숨 걸고 일했습니다. 광야 길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그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을 굶기시겠습니까? 4개월 되니까 만원인가를 줬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듯이 그 해에 얼마나 축복을 해주셨는지 모릅니다. 성도들 가운데 은혜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종들이 어려울 때 돕는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오히려 풍성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생활비를 안 주거나 조금 줘서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종으로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안 지켜도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켜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태복음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 예수님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은 주님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다고 예수님이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역자에게 생활비를 안 주고 달달 볶으면 예수님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천국을 가겠습니까? 그 사람이 예수 믿은 사람입니까? 양과 염소에 비유하면 염소들이 그렇습니다.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 이니라 그들은 영벌에 들어가리라'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헛 믿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구원받을 믿음을 가져야지 자기 멋대로 살면서 집사 장로가 되면 구원받을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결국은 지옥의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젖먹이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들을 가리켜서 육신에 속한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이렇게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했으니까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긴 있습니다. 이들 속에 성령이 계서서 믿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이 어린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너무 작아서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인간을 더 사랑하고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작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어떤 땐 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신자 같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때는 성령을 좇아 행하고 어떤 때는 육신을 좇아 행하고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5장 16~24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 나라에 절대 못 간다는 겁니다.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로마서 8장 5~8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5육신은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이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그러므로 12절에 보면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 따라 사는 사람과 육신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있고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 언제나 이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젖 먹이신자의 특징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 때는 믿는 사람 같다가도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면 안 믿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에 너무 많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오래 다녔다고 집사 장로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교파 중 아주 큰 교회에 부흥회를 하면서 가서 보니까 그 교회 장로들은 주일날 모였다하면 YS파 DJ파 하면서 멱살 잡고 싸움을 합니다. 교회 와서 싸움만 합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젖먹이 신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시기가 있습니다.
남 잘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 배 아파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장로가 되면 배 아파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옆 교회가 부흥되어 자기 교회보다 잘되면 배 아파하고 그 교회를 비난합니다. 오는 주일 저녁부터 부흥회를 할 이용환 목사님 간증을 들으면 그분이 그 교회가 어려울 때 큰 교회에 대해서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달음이 왔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을 보니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큰 교회 목사님이 아브라함이라면 결국은 내가 비난하고 악담했으니까 그것이 다 나에게 돌아오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빨리 고쳤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을 가까이하고 존경하고 가서 배우려고 하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전에서 첫째 둘째가는 대교회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고치니까 축복을 받는 겁니다. 대교회라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을 잘 못하는 겁니다. 대교회를 만들려고 대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부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설교 잘한다고 부흥된다면 세상에 부흥 안 될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가 프로그램이 좋고 제자훈련을 잘하다고 부흥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다 해봐도 안 되는 교회는 부흥이 안 됩니다. 천명 모이는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의 3%, 500명 모이는 교회는 5% 안에 듭니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 교회가 10명~20명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같이 목사님들이 정보가 많고 지식이 많고 설교 자료가 많고 많은 방법이 있지만 그래서 다 부흥된다면 작은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어떻게 축복을 받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받기 전에 서로 시기 질투했습니다. 마태복음20장 20절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한 아들은 예수님 우편에 한 아들은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러 왔습니다. 이 사실을 안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기 전 제자들은 젖먹이 신자였습니다. 누가복음22장 24절에 보면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 다 됐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고 서열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서열이 있고 장로님들 사이에 무슨 서열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이 더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람, 종노릇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머리가 되고 그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세상과 다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분쟁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화평하지 못합니다. 왜 분쟁이 생기는 줄 압니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 분쟁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분쟁이 생기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사람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 따라가면 안 됩니다. 사람 편에 서면 안 됩니다. 사람 편에서면 이 파 저 파 생겨서 고린도교회처럼 고넬료파 사울파가 예수파가 생겨서 나누어집니다.

이 젖먹이 신자들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느냐, 아니면 회개하지도 않고 육신을 따르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냐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빨리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지금 이 마지막 때는 마귀들이 발악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마귀가 공격하여 우울증이 생기고 악신이 들어가 버립니다. 이 철야기도에 나오신 분들, TV, 라디오,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분들은 다 복이 있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받아들일 마음이 없고 비판이나 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열심만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단들도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 줄 모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 전도하는 것 보면 얼마나 열심이 대단한지 모릅니다. 종교인들도 열심이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열심만 보고 집사 장로로 세우면 안 됩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열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을 믿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도 믿음으로 내는 열심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계산이 깔렸고 자기 기분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배를 드려도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는 예배를 드립니다. 강단에서 기도를 드려도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도를 잘하는 지 못하는지 다른 사람들에 신경을 써서 사람에게 맞춰서 기도합니다. 헌금을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사람보고 헌금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이 마음에 든다고 헌금 많이 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헌금 적게 하면 그 사람은 사람 보고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 받겠다고 십일조를 합니다. 사업이 잘되지 않으면 십일조 해도 하나님이 복 안 주신다고 십일조를 떼먹기 시작합니다. 또 조건부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감사할 일을 해주셔야지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믿게 된 것 감사하고, 구원받은 것 감사하고 지금 살아 있는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집에 나올 수 있는 것 감사합니다. 말씀 듣게 된 것 감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감사하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게 된 것도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분 따라 헌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분 좋으면 헌금 많이 하고 기분 나쁘면 헌금 안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찬양도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하는 것은 헛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만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제가 미국의 어떤 큰 교회에서 어느 여자 분이 눈을 감고 전심으로 하나님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은혜롭고 감동이 됐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직분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믿음은 없어도 열심히 있어서 총동원 전도할 때 아이들은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아픈 것은 죄를 많이 범하고 악한 짓을 하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 아이들을 다 실망시키고 배나 더 지옥 가게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열심 가지고 아이들은 데리고 왔는데 믿는 사람의 본을 보여 주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전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을 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평생 자기가 복음을 전했는데 남들은 구원받고 자기는 버림받을까 봐 사도바울은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 살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감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작은 죄라도 철저히 회개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죄를 적당히 넘기지 않습니다. 작은 죄라도 철저히 회개하기 때문에 아주 거룩하게 살고 항상 겸손합니다. 왜냐하면, 조그만 죄를 범해도 내가 죄인인 줄 아니까 겸손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감사할 것을 많이 깨달아서 아주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령의 사람에게는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항상 주를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충성된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부흥됩니다. 우리 수영로 교회가 왜 이렇게 부흥이 되었느냐 하면 성령 받은 성도들이 많아서 특별 새벽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서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날마다 날마다 변화가 됩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날마다 날마다 영적 성장을 합니다. 한 달 지나면 믿음이 더 좋아지고 일 년이 지나면 믿음이 더 좋아집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성령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이 많습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보면 첫째가 사랑입니다. 과거에는 사랑이 너무 없어서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은혜 받고 난 후 성령의 사람이 되어 사랑이 많아져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고 사랑을 베풀고 삽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왜 성령의 사람들이 얼굴이 은혜롭고 예쁘게 보이냐면 그 마음 바탕이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면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예수를 잘 믿고 은혜 받은 사람들은 갈수록 얼굴이 천사처럼 변합니다. 오늘도 제가 팔십 넘은 어떤 권사님을 만났는데 이분은 볼 때마다 더 예뻐집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워해야 합니다. 얼굴만 봐도 복되게 생겼고 너무 행복해 보여야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전도도 저절로 되고 더 좋은 동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그가 어려움을 당하면 눈물 흘려 기도해 주고 그가 잘 되기를 축복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한 가지라도 칭찬해주고 축복해 주는 것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다 받아줘야 합니다. 너무 따지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환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죽음이 와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면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젖먹이 신자들이 있다고 하면 오늘부터는 젖먹이 신자가 끝이 나고 모두가 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장성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미자립(개척)교회 목회자 모임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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